한자汉字로 풀어 읽는 도덕경 이야기, 아무리 맑은 거울이라 하여도, 더러운 것이 묻으면 이를 다시 깨끗이 하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거울이 우리 마음의 거울이라면 어떨까, 아무도 모르겠거니 하고 자기 자신에게 부끄러운 일을 한다면 후에 아무리 반성한다 한들 이를 깨끗이 지울 수 있을까. 우리 같은 소시민도 이럴진대, 위정자들은 어떨까, 국민을 위한다 입으로 그리 떠들었는데, 뒤로는 딴짓을 하고 있다면, 후에 그 마음의 짐을 무엇으로 지울 수 있겠는가.
도덕경 10장 전문.
재영백포일 능무리후 载营魄抱一 能无离乎
전기치유 능영아후 专气致柔 能婴儿乎
척제현람 능무자후 涤除玄览 能无疵乎
애민치국 능무지후 爱民治国 能无知乎
천문개합 능위자후 天门开阖 能为雌乎
명백사달 능무위후 明白四达 能无为乎
생지 축지 生之 畜之
생이부유 위이부시 生而不有 为而不恃
장이불재 시위현덕 长而不宰 是谓玄德
척제현람 능무자후 涤除玄览 能无疵乎
마음의 거울玄览에 얼룩을 아무리 깨끗이 지우려涤除 한들, 흔적疵도 없이无 지울 수 있겠는가能~乎.
현람玄览을 일반적으로 마음의 거울이라고 해석을 한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게 마음의 거울이라는 뜻이 되었을까.
람览은 "~을 본다"는 의미인데, 이게 어떻게 거울이라는 의미로 쓰인 걸까에 대해서 옛부터 많은 의문이 있었다. 그저 단순하게 본다는 의미이니, 앞에 현자도 있고 해서 마음을 본다, 그래서 마음의 거울이다라는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너무 논리가 비약적이라, 의구심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마왕퇴에서 백서 갑을본이 발견되면서 그 의구심이 풀리게 된다.
백서본에서는 람览자가 아닌 감监자가 적혀 있는 것이었다.
감监은 감시하다, 감독하다 할 때의 감자로, 고대 상형문자에서 밑에 있는 명皿은 세수대야 같은 그릇을 의미하고, 위의 부분은 큰 눈을 부릅뜨고 뭔가를 살피는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다. 고대에는 지금과 같은 거울이 없었기에,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그릇에 물을 받아 그 속에 비친 모습을 봤던 것이다. 그러기에 자신의 모습을 자세히 보기 위해서는 그 물에 요동이 없어야 하고, 뭔가가 떠 있어도 안 되는 것이다. 이렇듯, 감监은 그릇에 요동이나, 더러운 것이 있는지를 두 눈 부릅뜨고 보는 것을 형상한 것에서 거울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후에, 그릇皿에 물을 떠서 자신을 비쳐보던 것은 청동이 나온 이후 청동 거울로 바뀌게 되는데, 그래서 현대의 거울이라는 감鉴자에서는 밑의 부수에 그릇 명皿이 빠지고, 금속 금金자가 들어 가게 된 것이다. 도구의 발전에 따라 글자도 변한 예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지금까지 보던 통신본에서는 람览자로 되어 있을까.
여기에는 여러가지 가설이 있는데, 하나는 고대에는 한자의 수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으므로, 글자 모양이 비슷한 람览자를 빌려 쓴 것이 아닌가 하는 것과, 옮겨 적을 때 잘 못 적은 게 아닌가 하는 것이 그나마 설득력이 있다.
이제 본문으로 돌아와서, 척제현람 능무자후涤除玄览 能无疵乎.
자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앞서 도덕경 10장의 두문장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며 마음이 다른 곳에 가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즐겨야 하고,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감에 온 정신을 집중하여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3번째 문장에 이르러, 이러한 충실한 삶이 자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니, 어찌 보면 앞의 두 문장은 바로 이 세 번째 말을 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의 경우를 봐도, 매일매일 내 삶에 충실해야지 다짐을 하고, 열심히 살고자 노력도 하지만,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면, 그때 내가 왜 그랳을까, 하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과거를 어찌 되돌릴 수는 없고, 단지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미래를 대비할 뿐이다.
이렇듯, 우리 같은 소시민도 이럴진데, 국가를 경영해야 하는 위정자라면 어떨까.
아무도 모르겠지 하고 처리한 일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녹취가 나오고, 증거들이 쏟아지고, 뉴스에 나오고, 나라는 개판되고. 그나마 이렇게 밝혀지면 다행이지만, 진짜 아무도 모르게 지나가더라도, 결국, 그 행위를 저지른 본인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도 모를수록 본인 마음속에 더더욱 커지게 자리를 잡게 되고, 결국 본인 스스로 파탄의 길로 가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마음의 거울, 현람玄览이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현玄은 깊고도 오묘하여 그 속을 알 수 없는 것을 의미하므로, 현람은 깊은 내면에 존재하여, 자신만이 돌아 볼 수 있는 것으로, 이 세상 그 누구도 모를지라도, 결국 자기 자신은 알 고 있는, 자신을 비추는 심경心镜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우리가 삶을 충실히 산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산다는 것이고,
하늘의 도를 본받아 세상에 바른 정치를 펼치는 성인의 도 역시, 바로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정치를 펼치는 것이라고 노자는 본 장을 통해 우리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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