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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동양고전

도덕경 2장 두번째, 서로 화합해야 오래 간다

by 샤오야오윈자이티엔 2023.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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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풀어보는 쉽게 읽는 도덕경 2장 두 번째 이야기.

세상에는 다양한 관점이 있고 사람들은 모두 각기 다른 처지에서 그 상황에 따른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다양함이 서로 화합되고 존중될 때 비로소 살기 좋은 세상이고, 오래갈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 문장을 살펴보자.

고유무상생 난역상성 (故有无相生 难易相成 )                 

   장단상교  고하상경 (长短相较  高下相倾)                                     

   음성상화  전후상수 (音声想和  前后相随)   항야(恒也) 

예로부터, 유무는 서로 새로움을 만들고, 어렵고 쉬운 것은 서로 이루며

길고 짦음은 서로 교차하고, 높고 낮음은 서로 의지하며, 

음과 성은 서로 화합하고, 앞뒤는 서로 따른다. 이러할 때 비로소 오래간다.

 

도덕경 2장 두 번째에서 가장 중요한 글자는 항(恒)이다.

이란, 오래 간가는 뜻이다.

 

옛부터, 권력을 가진 황제들이나, 많은 돈을 가진 재벌들이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그들이 가진 권력이나 재력이 오래 지속되는 것일 것이다. 도덕경 2장의 두 번째에서 어떤 상황일 때, 그들의 권력이 오래 가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고 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권력이나 돈이 있건(有), 없건(无) 서로가 서로를 도와 상생(相生) 할 수 있도록 하고, 일이 어렵다(难), 피하지 않고 쉬운 것(易) 만을 찾지 않고 서로 같이 협조하고(相成), 서로의 장점(长)과 단점(短)을 서로 보완해 주고(相较), 지위가 높거나 (高) 낮으나(下) 서로 의지가 되어 주며(相倾), 하나의 소리(音)나 여럿의 소리(声)나 모두 존중되어 화합되며(相和), 앞선 이(前)나 뒤에 있는 이(后)나 서로 당겨주고 밀어줄 때(相随), 바로 이러한 사회가 되었을 때 비로소 오래가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삼국지 유비의 촉나라가 있었던 성도라는 곳에 있는 중국 IT 산업의 선도 기업인 텐센트의 메타버스 연구소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곳에서 메타버스를 설명해 주는데 도덕경의 문장을 인용해서 메타버스를 설명해 주고 있었다. 

 

"유무상생 생생불식 (有无相生 生生不息)"

현실의 세계(有)와 사이버 공간(无)이 서로 어우러 지니(相生) 새로움이 무궁무진하다(生生不息).

 

  고전을 인용하여 새로운 기술인 메타버스를 이렇게 알기 쉽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게 한자의 묘미가 아닐까 쉽다. 

물론 도덕경 2장에서 이야기한 유무는 권력이 있건 없건, 돈이 있던 없든, 건강이 있건 없건 간에 상대를 미워하거나 낮추어 보지 말고 서로 잘 화합하여야 한다는 뜻으로, 있고 없고의 관계를 이야기한 것이 아닐까 싶으나, 현대에 이르러 이를 메타버스에 빗데어 현실 세계와 사이버 공간으로 풀어내니 서로 상생해야 한다는 의미가 더 쉽게 다가오는 듯하다.

 

   도덕경 2장의 첫 문장에서 자신에서 아름답고 선한 기준만을 강요하거나 선동, 조작하는 것은 악이며, 불선이라 이야기하였다면, 두 번째 문장에서는 서로 상반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과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에 대해 어떻게 해야만 사회가 밝고 오래갈 수 있는 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부분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할 것이다. 갑질이 만연한 사회, 남보다 하나라도 더 갖기 위해 경쟁하고, 조그마한 피해도 감수하지 못하고, 서로를 경쟁 상대를 넘어 적으로 보는 사회, 도덕경은 우리에게 이러한 사회가 과연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생각해 보라 하는 듯하다.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서로 당기고 밀어주는 사회, 어찌보면, 위에서 이야기하는 세상은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유토피아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더럽고 어려운 일도 서로 마다한 지 않고 남을 위해 기꺼이 나서는 그러한 세상이 과연 이 현실 속에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도덕경은 그저 상상 속의 유토피아를 이야기하고 그게 실현될 때 비로소 오래간다는 이상주의적인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다. 도덕경은 아주 현실적인 책이다. 위에서 말한 유토피아적 세상을 어떻게 하면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해 2장 마지막 부분에 자세히 적고 있다. 같이 살펴보자. 

 

시이성인처무위지사  행불언지교 (是以圣人处无为之事  行不言之教)

이는 성인이 무위를 이룸이니, 말이 아닌 행동으로 그 본을 보이는 것이다. 

 

  2장의 마지막 부분에 도의 또다른 모습인 무위(无为)가 처음 등장을 한다. 

무위란 무엇인가, 무위처럼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그 해석이 분분한 단어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북경에 위치한 자금성의 중심에 위치한 태화전에 가보면, 황제가 앉는 자리 위에 큰 현판이 하나 걸려있는데 거기에 적혀있는 글이 바로 "무위(无为)"이다. 이렇듯 동양사상에 있어서 무위는 하나의 인생 목표이며, 지도자들의 정치 목표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무위는 무슨 뜻일까?

  우리는 보통 한마디로 무위가 뭐다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를 많이 접하게 되는데, 정작 무위라는 개념을 이야기한 도덕경에서는 여러 각도로 도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있듯이, 무위에 대해서도 한마디로 정의하기보다는 여러 예를 들어서 다양한 각도에서 설명을 해주고 있다.  무위가 무엇인가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들은 무위가 나올 때마다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도록 하고, 도덕경 2장에서 처음 나온 무위의 개념은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자. 

 

무위(无为)는 행불언지교(行不言之教) 이다. 

무위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닌 실천하는 것이다.

 

  도덕경 2장의 첫 문장이 선한 것을 전하는 것은 불선이라는 해석을 보고, 사람들이 나에게,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좋은 것(善)을 널리 전도(为)하라고 하시고, 그 말씀에 따라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전도 활동을 하는데 그것이 불선이고 악이라는 말인가 하고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시이성인처무위지사  행불언지교 (是以圣人处无为之事  行不言之教)"이다. 그리고, 이것은 성경에서 예수님 또한 같은 말씀을 하고 있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전도를 하라 하실 때, 추가로 하신 말씀은 "내가 행한 것을 너희들도 가서 행하라(行不言之教)"이다. 전도를 함에 있어서 말로 떠벌이지 말고, 실천으로써 하라는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종교들이 사람들에게서 외면을 당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실천은 없어지고 그저 말들만 남무하여 도무지 그 진성성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이렇듯, 좋은 것을 남에게 전파하는 행위가 선이 될 수도 악이 될 수도 있는 데, 그 기준은 그 선한 것을 전파함에 있어서 내가 실천으로 모범을 보이므로 감동을 주느냐 아니면, 그냥 말이나 권력 또는 조직등을 이용하여 좋으니 무조건 따르라고 강요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무릇 권력이나 돈이 있건 없건, 지위가 높건 낮건 간에 서로가 돕고 화합하는 사회를 만드는 방법은 최고 지도자가 그러한 삶을 실천하는 것뿐인 것이다. 이것이 도덕경에서 말하는 바른 정치인 것이며, 그럴 때 만이 오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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